1998. 4. 21.


《CD-ROM 高宗純宗實錄》 刊行辭1)



  《CD-ROM 高宗純宗實錄》 간행을 통해 민족사의 정보화를 이룩하기 위한 대장정의 한 걸음을 더 내딛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난 1995년, 서울시스템주식회사에서 조선왕조실록의 태조부터 철종에 이르는 부분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국역 朝鮮王朝實錄 CD-ROM》을 간행했을 때, 학계․문화계에서는 우리의 자랑스런 기록 문화 유산이 첨단 정보 매체에 담겨 새롭게 태어난 것에 대한 경이의 찬사가 있었고, 그 이후 오늘까지 그 속에 담긴 정보를 토대로 수많은 문자 및 영상 저작물이 산출되어 우리의 전통 시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제고되는 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국역 朝鮮王朝實錄 CD-ROM》의 학술적 문화적 기여는 그렇듯 충분히 입증되고 또 인정받은 바였지만, 데이터베이스의 큰 특징 중의 하나인 포괄성이라고 하는 점에서 볼 때, 거기에는 한 가지 아쉬운 면이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의 역사를 부분 부분 단편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朝鮮王朝實錄》 전체의 기록을 자유롭게 탐색하여 역사의 큰 흐름을 아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든 그 데이터베이스가 그 시대의 종반부에 대한 기록을 빠뜨림으로 해서 불완전한 형태로 남게 되었다고 하는 점입니다.

  《국역 朝鮮王朝實錄 CD-ROM》이 간행될 때, 고종․순종 부분이 빠진 이유는 당시까지 그 두 왕의 실록이 현대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역사학계에서 그 부분의 번역이 기피된 이유는 그것이 일제의 강점기에 편찬되었기 때문에 민족사의 정통성을 해하는 시각이 결부되어 있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설사 그 기록 속에 그와 같은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엄연히 존재하는 역사 기록의 존재 자체를 외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사료들은 더욱 치밀하게 검토하고 비평함으로써 우리 역사의 진실을 바로 세워야 할 것입니다.

  고종․순종실록 데이터베이스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번역자들과 편찬자들이 거듭 확인한 사실이지만, 이 사료 속에는 500여 년 동안 고유한 모습으로 지탱해 온 왕조가 외부 세계의 도전에 직면하여 과거의 모습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었던 과정에 대한 상세한 기록들이 담겨 있습니다. 역사라고 하는 것이 단절보다는 연속성에 주안점을 두어 탐구되어야 하는 것이고 보면, 전근대와 현대 사이의 놓인 그 변화의 시대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중요시되어야 함을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고종․순종실록은 철종까지의 국역 실록에 비해 양적으로는 작은 분량이지만, 데이터베이스 제작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은 훨씬 컸다고 생각됩니다. 첫째, 데이터베이스 편찬에 앞서 한문 기록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했습니다. 실록과 같은 기본 역사서의 번역은 정부나 학계에서 수행했어야 할 일이며 서울시스템과 같은 기업이 담당할 몫은 아니었겠지만, 현실적으로 우리 외에는 그 역할을 대신해 줄 곳이 없었기 때문에 부득이 이 일부터 손대게 된 것입니다.

  《CD-ROM 高宗純宗實錄》 간행을 위해 기울인 또 하나의 중요한 노력은 한국어 번역문과 함께 한문 원문을 데이터베이스에 함께 수록함으로써,  모든 기사들을 대조 열람할 수 있게 하였음은 물론, 한글과 한문 어느 쪽의 글귀로도 자료를 검색할 수 있게 하였다고 하는 점입니다. 한문으로 기록된 원사료의 내용을 글자 한자 단위로 자유롭게 검색할 수 있게 한 기능은 특히 전문 역사학자들의 연구 활동 적지 않은 편의를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원전에 쓰인 모든 한자와 옛한글이 전자적으로 재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디지털 서체를 만드는 작업에도 적지 많은 인력과 시간이 투여되어야 했습니다.

  《CD-ROM 高宗純宗實錄》을 간행함으로써 우리말로 옮겨진 조선왕조실록의 데이터베이스 편찬 사업은 마무리되었지만, 서울시스템에서는 조선왕조실록의 한문 원전 전체를 전산화하는 사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버려져서는 안될 우리의 소중한 문화 유산이 미래의 정보 세대들에게 상속될 수 있게 하기 위한 이 사업들은, 우리의 역사와 전통 문화를 아끼는 여러분들의 관심과 협력이 있을 때 더욱 힘있게 추진될 수 있을 것입니다.

  《CD-ROM 高宗純宗實錄》의 간행이 이루어지기까지, 번역과 교열에 정열을 다해 헌신해 주신 편찬위원 여러분께, 그리고 데이터베이스 기술 개발과 자료의 전산 편찬 업무를 수행한 한국학데이터베이스연구소의 연구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 서울시스템(주) 이웅근 회장을 대신하여 쓴 글